주님과 연합으로 가는 길 프린트   
지 킴  Email [2016-02-18 15:18:49]  HIT : 570  

주님과 연합으로 가는 길                                 하박국 3:17-19

 

한국사람들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얻을 때, 가장 행복할 때, 이제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렇게 고백하실 수 있는 분 있으신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있으시면 한번 손들어 보실까요? 없으십니까? 저밖에 없나요?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하박국서 3: 17_19 에서 기자가 말합니다. 집안에 아무것도 없고 인생이 망하고 찌질한데 그래도 주님으로 기뻐한다. 이런 행복과 감사가 있다. 나의 발이 사슴처럼 다닌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내가 육체 가운데 살지만 내가 나를 주관하지 않고 그분이 나를 주관함으로 살아가는 감사함, 현재 상황이 어떻더라도 세상에 온갖 좋은 것들도 악한 것들도 이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더 갖고 싶은 것도 누리고 싶은 것도 없이 주님 한분 만으로 완전히 행복한 삶,

 

주님과 완전히 연합된 삶, 완전한 친밀함, 완전히 행복한 삶을 성도님들께서 가지시기를 원하시면 제 설교를 잘 들으십시요. 제가 하려는 설교는 전혀 특별한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많이 들으신 설교 내용들을 정리하고 연합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는 것 뿐입니다. 이 주님과의 연합으로 가는 길,친밀함으로 에 성도님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주님과의 연합으로 친밀함으로 데려가는 주체는 내가 아니고 주님이십니다.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우리를 향한 가장 크고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가 거절하고 싶을지라도 거절할 수 없는 잔인한 사랑이신 그분이 친히 인도하시고 주장하십니다. 연합으로 가는 길의 종착지는 주님 안입니다.

 

누가 주님과 연합으로 가는 길을 시작할 수 있는가? 주님께 구원받기로 선택된 성도들입니다. 주님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창세전에 당신의 자녀들을 선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언제 주님과 연합으로 가는 길을 친밀함으로 가는 길을 시작하는가? 대부분 벌써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을 구주로 인격적으로 영접하고서부터, 우리는 연합으로의 가는 길이 시작됩니다.

 

성경만이 우리를 주님과의 연합으로 인도하는 더할 것도 뺄것도 없는 완전한 지침서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속에서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하나님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의 제자가 되라고 하시며 제자가 되는 조건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은 마치 두 날개와 같기도 하고 두 바퀴처럼 우리를 균형있게 하여주십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더불어 주님과의 연합으로 가는 길이 끝날 때까지 이땅에서 우리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할 두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이들은 바로 자기부인과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눅 9: 23 에서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통해서 이 길을 인도하십니다. 왜 주님은 우리에게 좀 더 멋진 영광과 기쁨이 아닌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우리에게 동반자로 주셨을까? 혼동합니다만, 우리는 죄속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악한지라 우리에게 이런 동반자라만 끝까지 우리를 인도할 수 있기에 우리에게 이런 조건을 통해서 주님께 오라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이 갈 5: 24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우리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통해서 못박으라고 하십니다.

 

늘 우리는 우리 생각에 우리 눈에 좋은 것은 축복이고 눈에 싫은 것은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이렇게 판단하는 것입니까? 죄인인 내가 선악과를 먹은 죄인의 가치관으로 축복과 저주를 나눕니다. 어떤 무명인이 쓴 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심으로 나를 더욱 더 주님의 형상과 닮게 하시기 위해 나의 모난 부분들을 깎으실 때 하나님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시지만 나는 그것을 고난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사랑하심으로 나를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낮은 마음과 넓은 마음을 갖게 하시려고 좁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은혜라 부르시지만 나는 그것을 연단이라 부릅니다. 사탄이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질투하여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나에게 물질의 부함과 세상의 즐거움을 풍족히 불어 넣어줬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시험이라 부르시지만 나는 그것을 축복이라 부릅니다.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바라보기에 나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오해하고 잘못 받아들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아버지의 계획하심과 뜻하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주님에게 아버지의 지혜를 구하고 나의 아둔하고 어두워진 눈을 밝혀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간혹 내가 이해할수 없는 일들로 인해 마음이 무너 질때도 있겠지만 그 분은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이기에 , 늘 하나님과의 시선 맞추기를 게을리하지 않기를.....우리는 모두 건망증 환자라서, 자꾸자꾸 들려주지 않으면 까먹고 맙니다. 내 맘은 한없이 가라앉아 먹먹해질 때 눈을 들어 우릴 사랑하시는 그분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라는 것들을 한번 뒤집어서 보시면 주님이 눈에 훤히 보입니다. 눈에 좋은 것은 시험이고 눈에 싫은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를 주님께 데려가는 것은 우리 눈에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잠깐 행복하고 감사하다가 대부분 우리를 주님께 멀어지게 합니다. 맞습니까? 그래서 우리 뜻을 따르지 말고 부인하라고 합니다. 결코 달갑지 않은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뭐가 좋은지 모르는 인간에게 방향을 모르는 인간에게 주님은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통해서 당신께 오라고 하십니다. 매일 십자가를 기쁘게 진다는 것은 어제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오늘의 모든 상황을 가장 기쁘게 받아들이며 내일을 주님께 맡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대하여 절망하게 하십니다. 작고 큰일들을 통해서 세상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실직, 사업이 망하는 일, 자녀들 문제, 건강,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세상을 버리라, 주님께만 소망을 두라고 하십니다. 내가 버리지 않으면 세상이 나를 버린다고 사도 바울이 갈 6:14 에서 말씀합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미 주님과의 연합에 들어간 사람 친밀함에 들어간 사람은 주님이 내가 원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실 때 그것이 내게 베푸는 최선의 사랑임을 압니다.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악함과 약함을 발견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그분임을 인정하게 하십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내가 주인인줄 알고 잘못 살았음을 회개케 하십니다. 원하지 않는 일, 사고, 실직, 자녀들 문제,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는 일등이 우리에게 올 때 내가 무슨 죄가 많다고 뭘 그렇게 잘 못했다고 이런 시련을 내게 주시나? 라고 우리는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거절합니다. 이런 모습들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에게 선한 것이 전혀 없음을 악으로 가득 차서 내가 주님을 살해한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결코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도 없습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없을 때, 주님 저는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수 없는 무능한 약하고 악한 존재 입니다 라고 할 때 주님은 우리를 도우셔서 그분의 도움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짐은 더 어렵습니다. 힘겹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거절합니다. 교회 헌금을 하고 교회 봉사를 잘 하고 전도를 잘 하는 일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일 보다 더 쉽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들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일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외형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에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주님안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만이 우리를 연합으로 친밀함으로 데려갑니다.

 

주님과 연합으로 친밀함으로 가는 길에는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크리스챤이 가는 길에 많은 샛길들이 있습니다. 고생스러워 보이지 않는 길, 쉬워보이는 길, 그 길을 따라 가다가 죽을 고생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들을 보면서 우리는 연합으로 가는 길을 이탈시키는 것들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여러 장애물들 중에서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번째 장애물 , 샛길은 기복주의 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여 세상에 속한 복을 얻으려는 마음, 하나님을 달래고, 충성하고 복을 받으려는 인간 본연의 마음, 우리 눈에 좋은 것들, 세상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종으로써 그분께 영광을 돌리려면 이런 것 저런 것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도 예외가 없이 이 땅에서 가난하지 않고 건강하고 자녀들이 잘 되고, 장수하고 명예롭고 잘 살고 싶습니다. 누가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가 이렇게 잘 살기를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성도가 찌질이 가난하고 아프고 가정은 파탄나고 수치스럽게 살기를 바라시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것들도 영적인 것들과 함께 간구합니다. 잠언 307-9성경에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마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소서, 하나님 잘 섬기게 하소서, 이것이 마치 복음이라도 되는 듯이 기도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말은 뒤집어서 보면 저는 세상에서 가난하지는 말고 존경받는 위치에 나를 머물게 하여 주십시오 라는 야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니 무슨 불 경건한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절대로 하나님을 이용해서 잘 살려고 하는 마음이 없고 순수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여러분이 실직하고 사업이 망하고 찌질하게 가난하게 만드시고 자식들은 망나니가 되고 이혼하거나 상처하거나 그래서 세상에 손가락질 하는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영적으로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도 좋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시겠습니까?

 

고난이 없을 때 우리는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듯 합니다. 그런데 고난이 오면 내가 얼마나 충성했는데 십일조, 헌금, 교회를 사랑하였는데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속된 말로 본전 생각이 납니다. 기가 막힙니다. 왜 하나님은 그때 막아주시지 않으셨나? 하나님이 과연 계시기나 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200611월에 세번째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 건강검진을 받는데 허운석 선교사에게서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폐암 선암 2기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5년안에 50% 살고 50%죽는다. 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당연히 50% 사는 줄에 설 줄 확신하였습니다. 왜 선교사로 그렇게 덥고 습하고 독충이 많은 아마존에 가서 몸을 부셔숴라도 인디오 한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하여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헌신하고 주님을 사랑하였는데 주님이 우리 손을 들어주시지, 그래서 50% 사는 줄에 서는 것이 당연하지, 설교를 들으시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틀렸습니까 맞았습니까? 이것이 지성이면 감천이고 인과 응보라는 원리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페암 2기로 수술을 하였는데 기적으로 치료가 되었다. 이 간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다. 교회는 이런 간증을 들을 때 기뻐합니다. 영어로 Give and Take 주고 받는 것, 우리가 하나님께 바친 것 만큼 주셔야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마존에서 선교사로 사역할 때, 순수하게 전혀 대가를 바라지 읺고 아마존에서 충성하였는데 후에 보니 보상을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깊은 저변에 장사꾼의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손을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3년이 지나고 재발하였습니다. 그때 저희의 충격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사랑이 우리의 죄와 악을 보여주셔서 우리를 정결케 하여 주시는 일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에게도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주님께서 꼭 들어주실 줄 알았는데 들어주시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느꼈던 그 쓰라림의 경험이 있으신가요? , 인간이 주님께 하는 모든 헌신 사랑 충성 이 모든 것들이 기복주의에 기초를 둡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바치는 헌신과 일반 종교인들이 자기를 위하여 행하는 공덕과 아무 차이도 없습니다. 기복주의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세상에 속한 복을 얻으려는 마음, 달래고 충성하고 복을 받으려는 인간 본연의 마음, 우리 눈에 좋은 것들, 세상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늘 기복주의라는 샛길에 빠져서 연합으로 가는 길 친밀함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립니다.

 

이름   비밀번호

비밀글
     1159. The Way To Union with Jesus Christ
     1082. 2015 토론토 강림교회 & 밀알교회 단기선교영상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