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편지8 - 거기엔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 프린트   
관리자  Homepage Email [2020-05-27 23:59:08]  HIT : 39  
▲ 고 허운석 선교사(우)와 김철기 선교사가 함께한 모습. 부부의 환한 미소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 끝없이 펼쳐진 아마존 정글에서 길을 떠나고 있는 김철기 선교사.


'종교적 야망'이었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자는 욕심은 아니었다. 명예욕도 아니었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종교적 야망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생명의 주님을 버리고, 내 거룩한 야망을 따랐다.

 

그것이 야망일 뿐임을 알아차린 것은 아내 허 선교사가 곁을 떠난 뒤였다.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아마존 인디오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시대의 사기꾼이었다. 위선자 중의 위선자였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속아서 수 십년을 살아왔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58세에 아내 없는 홀아비가 되었다.
 

약 4시간에 걸친 암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옮겨지는 아내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마치 숨이 멎은 것 같은 얼굴, 환자 복에 묻어 있는 붉은 피, 그때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아내는 밤이 되어서야 회복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한밤 중, 통곡 소리와 함께 보호자 대기실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날 밤은 너무나 두렵고 소름끼치게 외로웠다. 아내가 일반 병실로 옮긴 뒤 담당 의사가 와서 결과를 알려줬다. 선암이라고 부르는 폐암이었다. 아내는 2기 A단계인데, 임파선 한곳에 전이가 되었다면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열흘 후에 돌아가야 했다. 아마존신학교 학기가 끝나는 동시에 외부강사를 모시고 인디오 마을지도자 교육이 10일간 있는데다 졸업식도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아내를 이모님 댁으로 옮겨 놓고 길을 나섰다. 떠나는 날, 화사한 꽃바구니를 주문해서 허 선교사 방에 놓아 주었다. 아파트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는데 허 선교사가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따라 울 것만 같아 황급히 돌아서서 공항으로 갔다.
 

그때 내가 어떤 기도를 했던가? '선하신 주님, 당신의 여종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 얼마나 신앙적인 기도인가?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기도는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허 선교사의 경우 50% 는 살고, 50%는 죽을 수 있는 확률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반드시 살 것이라고 믿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 여인인가? 본인의 목숨보다 인디오 형제들을 더 사랑한 여인이 아닌가! 폭포를 몇 개나 넘고 험난한 길을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아마존의 용감한 군사이지 않은가! 내가 해야 할 기도는 회개기도였다.내 마음을 찢고 그동안 내가 붙들고 살던 내 자랑과 자기 의, 종교적 야망을 버렸어야 했다. 가증스럽게도 주님께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고통을 내 의를 드러내는 데 이용하는, 거룩함을 흉내내는 악한 자였다. 주님은 내가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 사역에 목숨을 걸다 보니 나는 언제나 긴장했다. 일의 효율성을 위해 늘 머릿속으로 사역을 구상했다. 좀 더 완벽하게 잘 하고 싶어서 24시간 사역만 생각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사역만 생각했다. 쉼도 평안도 전혀 없었다. 허 선교사는 내게 일중독에 걸렸다고 말하곤 했다.

 '언젠가 내가 아마존을 떠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일까? 처음에는 아마존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해서였지만 집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늘 완벽주의자로 살았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비록 내가 손해 보더라도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했고, 주님은 다음이었다. 사람 눈치를 많이 봤다.
 

허 선교사는 암 수술을 받고 "이제 좀 쉬고 싶으니 사역을 좀 줄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때 허 선교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가슴 속에 깊은 회한으로 남아 두고 두고 통곡하게 한다. 사역을 줄이기는 커녕 오히려 산타이사베우와 바르세우에 교회를 개척했다. 굳이 변명을 한다면 선교사역은 교회가 자동적으로 성장하듯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숨은 진실은 무엇인가? 내가 오랫동안 기도하고 연구한 뒤 시작한 사역인만큼,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었다. 나의 확신을 하나님의 확신으로 밀어부친 것이다.
 

나는 주님께로 가지 않았다. 그분이 내게 원하신 일, 가장 중요한 일, 즉 나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사역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한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변화되는 것을 보는 기쁨이 마약을 하고 얻는 기쁨과 같을까 하고 생각할 만큼 그 감격을 좇았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행복했고 기뻤다. 하지만 거기엔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
 

김철기 목사/총회 파송 브라질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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