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편지3 - 아마존의 별미에 입맛을 길들이다 프린트   
관리자  Homepage Email [2020-05-28 00:16:29]  HIT : 66  
▲ 인디오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김철기 선교사


아마존에서 한국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대개는 브라질식으로 음식을 먹었고 한식은 가끔 밥을 지어 식으면 펄펄 날리는 쌀로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여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나자 김치나 다른 한국 음식도 그다지 생각나지는 않았다. 다만 몸이 아파서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렸을 때 한국 음식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어쩌다 김치를 먹을 때면 미각이 한국음식 맛을 기억하며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인디오 마을에 들어가서 사역을 하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마을에서 그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는데 처음엔 몹시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내색할 수 없어 식사시간이 고통스러웠다. 생선이나 고기들을 오래동안 보관할 방법이 없고, 우리가 사역하는 아마존 검은 강 상류지역은 물고기와 동물이 많지 않다. 그래서 생선이나 동물들을 잡아서 땅으로부터 약 1미터 높이에 발을 펴고 그위에 생선이나 동물고기들을 펴놓고 불을 피워서 훈제를 한다. 오래동안 훈제를 하면 생선이나 동물고기 껍질이 새까맣게 타며 마치 미라처럼 딱딱해진다. 그러면 몇 달간 보관이 가능하다. 그렇게 훈제한 생선이나 고기로 음식을 만들려면 불에 탄 부분을 벗기고 물에 담궈서 약간 불린 후에 물을 많이 넣고 고추, 개미 양념장을 소재로 탕을 끓인다. 훈제하여 끓여낸 원숭이 탕, 악어, 생선 탕 국물은 거무스럼하다. 원숭이는 사냥당할 때, 숨을 거두며 고통이 커서일까, 손을 꽉쥐고 있다. 손을 움켜쥔 원숭이 손, 아기 머리같은 원숭이 머리가 접시에 나온다. 이런 음식을 처음 접할 때 결코 먹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형제들의 음식을 기쁘게 먹는 것이 내가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이런 음식들을 대접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인디오 형제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내가 이것을 삼키는 것이 한 영혼을 구원한다면 삼키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삼켰다. 과거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우리 나라에서 음식을 대접받을 때, 밥 그릇이 불결하다고 여겨서 밥을 대접받으면 안에 든 밥만 파먹었다는 기록을 보고 신학교 시절 그들을 몹시 비판했다. 하지만 막상 선교사가 되고 보니 나는 그들보다 더 힘들어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음식마다 독특한 맛이 있음을 느끼게 됐다. 각종 탕에 화링야 (farinha)를 집어 넣으면 국물 맛이 변하고 입맛이 돌게 된다. 훈제한 생선에 개미 양념장과 고추를 넣고 끓이는 탕은 얼마나 맛있는지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아마존의 별미 요리다. 아마존은 완전 무공해 청정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잡히는 생선들과 동물들 화링야는 모두 최상의 유기농 식품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최상의 식품을 제공하여 주신 것이다. 이제는 여러 형제들의 전통 음식들이 아주 맛있다.
 

신학교가 개교하고 1년이 지나자 독신자 뿐만이 아니라 기혼자도 여러 명 입학했다. 그중 한 명이 가족을 신학교에 데려오고 싶다고 했다. 남편이 없이 홀로 있는 아내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기혼자를 위한 숙소는 따로 없었으므로 곤란해하자, 그가 집터만 허락해 준다면 자신이 집을 직접 지어서 살겠다고 했다. 그래서 목재를 내주며 동료 신학생들에게 그가 집 짓는 것을 도와주라고 권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 한 명도 그를 돕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허 선교사가 답답한 마음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였다.
 

 "친구가 혼자 집을 짓는데 도움을 주십시요. 당신들이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마음에 도울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학생들이 '마음이 없다'는 말을 우리 몸에 '심장이 없다'는 말로 오해해서 거세게 항의를 했다. 포어로 마음은 심장(coracao)을 일컬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분노한 데는 뼈아픈 역사적 경험에 기인했다. 남미를 점령한 백인들이 "인디오는 들판에 뛰어다니는 영혼 없는 짐승이다" "좋은 인디오는 죽은 인디오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백인들의 멸시와 학대는 오랜 세월 인디오 부족들의 잠재의식 속에 분노를 키웠고, 그날 허 선교사가 말한 '마음'을 '심장'으로 오 해한 이들은 오랜 역사적 감정을 터뜨린 것이다. 겨우 수습해 오해를 풀 수 있었지만 언어 장벽은 여러 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그들에게 사랑과 용서, 평화와 같은 개념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웠다. 누군가 진실한 사랑과 용서를 삶으로 보여줘야 비로소 이해될 개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듯이, 우리 역시 그들의 언어를 우리 식으로 해석해서 오해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로 인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많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김철기 목사/총회 파송 브라질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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