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오들이 큰 강들과 강변에 거주하기 시작하며 부락을 이룬 것은 카톨릭 선교사들이 노예 사냥 돕던 일을 마치고 검은 강 유역에 들어오면서부터였고 그 후에 개신교가 들어오면서도 그런 방식으로 이끌리게 되었습니다. 인디오들은 원래 큰 공동주택을 건축하고 여러 가족들이 몇 대에 걸쳐 함께 거주하였습니다. 공간을 함께 나누고 삶을 함께 나누는 원형이 공동주택에서 함께 거주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렇게 공간과 삶을 함께 나누는 모습들에서 집단 개종의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그러다가 약 60년 전부터 개인 주택을 건축하고 살아갑니다. 지금은 어떤 마을에 대형 공동 가옥이 기념물로 세워져 있을 뿐입니다.

 

 

현재 인디오들의 가옥은 벽을 나무 껍질이나 판자, 흙으로 세우고 야자수 잎사귀 혹은 양철 지붕을 덮습니다. 집 뒤에는 열린 큰 뜰을 두고 아주 작은 학교, 약품 보관 창고를 둡니다. 마을 구조가 대개는 사각형에 아래를 열어놓은 것 같은 구조를 띄어서 그 중간을 운동장이나 함께 모이는 공간으로 둡니다. 각 동네마다 추장을 두는데 추장은 동네 사람들을 격려하고 동네 부역을 주관하며 모임들을 인도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권력을 갖는 것은 아니며 외부인 백인들과 동네 중간에 서서 역할을 감당합니다. 만일 한 동네에 인구가 30명이나 35명이 넘으면 약 7킬로미터나 10킬로미터 지점에서 그 동네 사람들이 사냥이나 낚시를 통해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더 멀리 나가서 사냥이나 낚시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물이나 물고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가족들은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를 만들어서 나가거나 임시적으로 강가의 혼혈인들(Ribeirinhos)과 더불어 살기도 합니다. 어디든 일자리가 있고 생존이 가능한 지역들을 찾아 나서기 때문입니다. 정글 속의 인디오들은 과일 나무들, 약품이 되는 식물들, 사냥 시 필요한 독을 만드는 식물들, 그리고 필요가 있는 정글 식물들도 보호하고 마른 나뭇잎들과 곤충들은 멀리한다.

 
 

강변이나 샛강이 아닌 더 깊은 정글 에서 거주하는 인디오들은 자기들의 전통 예식을 백인들이 거주하는 지역보다 잘 지킵니다. 이 지역 거의 모든 인디오들이 지켰던 악마라는 뜻의 쥬루빠리 (Jurupari) 예식 같은 경우는 강변이나 샛강 주변의 인디오들보다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강변이나 샛강에서는 선교사들의 활동에 의해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정글 속에서 사는 인디오들이나 강변에서 사는 인디오들이나 그들의 설화들이 있는데 그 설화들은 강변에 거주하는 인디오들이 가진 설화와는 또 다른 것들입니다. 설화들의 대개는 뼈 속의 자식(O filho do Osso)과 창조 전에 있었던 화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가 홀로 세상을 청소하고 여러 번 자기들의 조상들과 인류를 창조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상의 일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혼란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오늘 여러 가지 불편한 일들, 강변에 거주하는 인디오들의 밭일들, 사람들 간의 오해들과 질병들 죽음 같은 것이 생긴다고 믿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나 불화는 큰 동기가 되어 작은 동네로 옮기거나 사냥을 떠나게 합니다. 강변에 거주하는 인디오들은 다른 공간으로 흩어지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우와빼스 유역의 인디오들과, 카쿠와 (Kakuwa), 후피다 (Hupda), 유후프데 (Yuhupde) 인디오들은 관습적으로 강변에 거주하는 뚜까누 인디오들을 위하여 사냥을 한다. 그리고 강변에 거주하는 뚜까누 인디오들은 농사일을 한다.

정글에서 거주하는 인디오들은 그들 거주지 주변에 큰 밭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강변 인디오들은 생각하기를 육식만 하는 것은 건강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정글 인디오들은 강변 인디오들에 비해 작은 밭들만을 가지고 속히 그들 주변의 정글이 파괴되기를 원하지 않아서 소규모의 식물들만을 심는다.

 

와빼스 유역의 인디오들과, 카쿠와 (Kakuwa), 후피다 (Hupda), 유후프데 (Yuhupde) 인디오들은 관습적으로 강변에 거주하는 뚜까누 인디오들을 위하여 사냥을 합니다. 그리고 강변에 거주하는 뚜까누 인디오들은 농사일을 합니다. 정글에서 거주하는 인디오들은 그들 거주지 주변에 큰 밭을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강변 인디오들은 생각하기를 육식만 하는 것은 건강에 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글 인디오들은 강변 인디오들에 비해 작은 밭들만을 가지고 속히 그들 주변의 정글이 파괴되기를 원하지 않아서 소규모의 식물들만을 심습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강변에 거주하는 인디오들과 더불어 공존하는 법을 익혔는데 이것들은 전통적으로 어떤 체계가 만들어져 강변 인디오들은 정글 인디오들을 그들의 동생으로 간주하며 정글 인디오들은 강변 인디오들에게 복종하며 봉사하며 서로 문제들을 해결합니다.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그들의 특산품을 나누며 함께 공존하는 나눔의 문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여인들은 화링야와 베주를 만드는 이런 일들을 하루 종일 하고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준비한 후 만디오까를 심은 밭아 나갑니다. 전날 캐낸 만디오까 나무 줄기를 땅에 심고 밭에 나 있는 잡초를 제거하고 전에 밭으로 쓰던 곳에 나가서 혹시 어떤 과일이 있나 찾아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전날 하던 만디오까 가는 일을 계속합니다. 아울러 강가에 나가 물을 길어 와 만디오까를 씻고 불을 피우기 위하여 장작을 준비하며 음식을 준비하고 어린아이들을 돌봅니다. 이런 많은 여인들의 일들로 인하여 여자 어린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동생들 돌보고 어머니를 돌보며 가사일을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남성들은 여인들과 함께 밭에 나가서 여인들을 도와 밭에 잡초를 제거하며 만디오까를 지고 오는 일을 돕습니다. 항상 근본적으로 옛날 마을들은 만디오까 밭과 집이 멀리 있어서 집에서 밭까지 가는 일들, 만디오까를 운반하는 일들이 큰 일들이었습니다. 대부분 남성들의 도움은 다시 화링야를 만들 준비와 화링야를 판매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남성들의 일은 만디오까를 제외한 다른 쪽의 양식을 제공하는 책임을 집니다. 그것은 곧 물고기 잡는 일과 사냥하는 일입니다. 대체적으로 남성들은 날마다 또는 밤마다 카누를 타고 낚시나 사냥을 나갑니다. 그러므로 남성들은 어디에서 언제나 낚시나 사냥이 가능하고 그 기술이 발달하여 있습니다. 모든 남성들은 대개 한 개의 카누를 갖고 있으며 더 멀리 낚시나 사냥을 나갈 수록 그만큼 인정 받습니다. 어떤 때 남성들은 사냥을 위하여 오래 동안 정글을 누비며 대단한 인내와 주의를 기울이면서 멀리 가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토기 그릇이나 바가지를 만드는 일은 여성들의 몫입니다. 만디오까 갈은 가루에서 물을 빼는 기구, 치피치 (Tipiti) 같은 것들과 광주리들은 남성들의 일입니다.

 
 

인디오 부족들은 거의 모든 마을들이 아침과 저녁 식사를 공동으로 합니다. 각자 집에 있는 음식을 요리하여 와서 함께 먹습니다. 큰 사냥감을 잡았을 때, 즉 사슴이나 안따(Anta)라고 하는 큰 돼지만 한 동물을 잡았을 때는 모든 동네 사람들과 함께 고기를 먹습니다. 저녁 식사 같은 때 그 사냥 고기를 다 함께 먹도록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 각 가정에서 음식을 해 오도록 하여 아무런 제한 없이 한 사람이 잡은 동물 고기를 나눠먹는 관습이 있습니다.

식사 전에 꼭 손을 씻어야 하며 음식을 주신 신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고기와 생선을 함께 요리할 수 없고 아울러 가족 중에 누군가 뱀에 물렸을 경우 가족들 전체가 음식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대부분 아침과 저녁에 여인들은 광주리에 베주와 냄비에 화링야 죽이나 생선국을 가지고 가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공동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의 전통은 초대 교회의 나눔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각 부족들에게서 각 다른 문화를 보는데 그 것은 검은 강 상류와 중류에서 다릅니다. 과거의 전통적 가옥 형태는 대형 주택, 일명 말로까(Maloca)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대형 주택, 말로까는 노예 사냥꾼들과 초기 선교사들의 공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브라질 내에서는 거의 버려진 상태인데, 다만 어떤 지역에서 기념으로 치키에 강과 우와빼스 강에서 그 형태를 재현하였습니다.

대형 주택은 단순한 공동주택이 아닙니다. 이곳은 근본적으로 종교 예식을 집행하는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설계도 내부가 특별한 의미들을 가지며 과거의 대형 예식을 가지게 하며 설화의 근원과 그들 사회 조상들의 원시적인 궤도를 알게 해 줍니다.

과거의 건축 형식과 관습을 따라 건축된 전통 가옥은 약간 원형이고 길이 27.60센티미터 넓이 18미터 입니다. 지붕은 야자나무 잎사귀(Carana)로 덮고 물이 양쪽으로 흘러내리도록 했고 중앙의 지붕 높이가 7미터 30센티미터 이며 양쪽 끝은 1.52센티미터로 끝납니다. 지붕은 야자나무 잎사귀를 덮었고 한쪽 바람과 비가 많이 내리는 부분은 야자나무 잎사귀를 길게 내려 비로부터 보호했습니다. 벽은 약 2.50센티미터까지는 대체로 나무 껍질을 사용해서 가렸고 그 위는 야자나무 잎사귀(Carana)로 연이어서 가렸습니다. 기둥과 석가래, 야자나무 잎사귀 등은 모두 등나무 가구 재료(Cipo)로 엮어서 아름답습니다.

그 공동주택 안에 복도와 회의, 춤, 방문과 노동 공간이 있고 더 깊이에 큰 통나무의 중앙을 파내고 술을 보관하는 술통이 있고 화링야(만디오까 가루)를 볶는 불 판이 있습니다. 어떤 공동주택에는 각 귀퉁이에 칸막이를 만들어 네 가족들이 거주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공동주택은 아무런 칸막이 없이 거주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주택은 건물의 칸막이를 이용하여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칸막이는 가족의 구성원에 따라 만들어졌고 그 가족들의 가장 어른은 공동주택의 입구로부터 가장 깊은 곳에서 거주했고 나이 어린 형제는 왼쪽 왼쪽에서부터 결혼한 순서에 따라 서열이 주어졌고 남성으로 미혼은 입구에서 거주했고 손님들은 공동주택 입구에서 만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로까는 계속 동일한 방법으로 건축되었는데 그것은 사회적인 친척 관계와 오랫동안 대를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축제 기간 동안의 규정된 예식을 거행할 때는 남성들은 춤을 시도하고 깃털을 몸에 달며 공동주택 중앙을 새롭게 장식하며 중앙 공간에서나 아니면 작은 공간에서 축제 기간의 그 설화와 의식에 따라 춤을 추었는데 그때는 신성한 공간이 따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인디오 부족들은 과거에 말로까라고 하는 전통 가옥에서 여러 세대가 공동으로 기거하며 질서 있게 공간을 나누어 함께 살면서 많은 것을 그 안에서 해결하였고 지금도 한 가족이 손님으로 방문하면 몇 달이고 같은 집에서 잘 어울려 살며 도움을 제공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