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강 상류 신학교는 초교파인데 장로교회를 개척한 이유는 인디오 마을들은 교파가 나눠져 있지 않았지만 브라질 인들이 거주하는 썽가브리에우 동네는 이미 교파들이 나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라질 인들이 거주하는 동네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장로교회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썽 가브리에우 교회는 현재 세례교인 약 100명과, 어린이들 100명을 합하여, 매주일 평균 약 200명 가량 낮예배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 교회에 어른 20명 어린이 40명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교회 사역자들로는 저와 아내, 검은 강 신학교 졸업생 에르미스 목사, 넬슨 목사가 있습니다.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는 검은 강이 흘러내리며 생성한 동네들 중 가장 큰 동네입니다. 이곳은 브라질과 콜롬비아 베네주엘라 3국의 국경이 위치하며 적도가 지나가는 곳이며 주변에 산들과 강변, 돌출된 바위들, 강 가운데 중간 중간의 섬들이 떠 있어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이 동네는 원래는 인디오 마을 중의 한곳이었는데 약 100년 전 국경 수비대 브라질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동네가 확장되어 지금은 약 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동네로 발전되었습니다. 이 동네는 주변의 모든 인디오 마을들의 중심에 있으며 인구의 90퍼센트는 순수 인디오며, 약 10퍼센트는 브라질 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검은 강 상류 인디오들을 위한 제 1기 사역 기간 동안 우리는 주중에는 신학교 사역을 했고, 주말에는 선배 선교사가 인디오 마을에 건축하여 놓은 예배당들을 순회하며 설교와 성례식, 헌당 예배를 주관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첫째, 늘 마음속에 교회를 개척하여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인들을 양육하고 싶어했던 마음이 있었고, 둘째, 1995년 4월 중순 신학교 대지를 구입하여 놓은 후 신학교가 건립되기를 기다리면서 그 준비 기간에 교회를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셋째, 동네의 여러 곳에서 늘 개인 전도를 할 때 내가 어느 교회 소속인지 질문을 받았고 내가 인도하는 교회에 나오기 싶어 하여서 교회 개척을 해야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넷째, 내게 전도 받은 인디오 마을 형제들이 나를 만날 장소로 교회 개척이 필요하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20분을 소요하며 전 동네를 순회하는 미니 버스를 타고 동네를 돌며 기도하며 예배 장소를 물색하였습니다. 동네 중심가와 강변에는 브라질 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인디오들은 동네 외곽 지대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디오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선택하고자 했는데 마침 두 개의 판자집이 있는 약 750평의 대지를 소개받게 되었고 쌍빠울로에 거주하는 동양선교교회, 김태현 장로 내외의 도움으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가로 6미터 세로 6미터의 집을 수리하여 사택으로 사용하고 그 옆에 있는 8미터 10미터의 집을 수리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기로 하여 예배 처소를 준비하였습니다.

 
 
 

1995년 6월 25일 약 25명의 교인들과 함께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창이 세 개밖에 없었던 판자집에 여러 개의 창문을 만들고 벽과 천장을 베니어 합판으로 쒸우고 페인트칠을 하며 뒤에 약 2미터 가량을 나누어 두 개의 주일학교 교실로 꾸미기 위한 공사를 서울 신촌 장로교회 김상형 장로의 도움으로 진행하였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내게 전도를 받고 처음 교회 모임에 나왔으므로 첫 모임에 나는 예배를 이렇게 드리는 것이라고 예배 순서들을 설명하는 교육을 하고 기도하고 마쳤습니다.

 
 
 

형제들의 집(인디오 합숙소)운영
형제들의 집 개원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인디오 형제들이 우리 동네에 생필품이나 질병치료를 위하여 나왔을 때에 잠시 며칠 동안 머무를 수 있는 집이 필요하여 합숙소를 건축하여 주기를 부탁하였기 때문입니다. 2000년 말 쌍빠울로의 김태현 장로 부인 최유순 집사가 대지를 구입하도록 헌금을 보내오고 또 전도명 선교사가 장학금으로 받은 헌금과 뉴욕의 장석렬 박사가 건축비를 보내와 단순한 건물을 건축하였습니다. 제 2의 형제들의 집이 매년 아마존에 와서 의료봉사를 하는 안정태 집사 내의와 안집사가 출석하는 새로남교회(오정호목사)의 도움으로 건추되어졌습니다. 이 형제들의 집에는 약 100명의 형제들이 늘 머물렀다가 마을로 돌아갑니다. 교회에서 사역자를 파송하여 그곳에 상주하며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식사를 제공합니다.

인디오 진료소
인디오 진료소는 크고 작은 강 지류를 따라 정글 속 인디오 마을에서 생활하던 인디오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뱀에 물리면 몇 일씩 카누나 배를 타고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 군인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치료를 받고 난 후 옮겨져서 치료를 받는 진료소입니다. 이곳에 매주 토요일 예배가 있습니다.

감옥사역
어디나 범죄가 존재하듯 이곳 감옥은 경찰서안에 범죄하여 형을 살고 있는 인디오 죄수들과 브라질 인들이 갇혀 있는 곳에 매 주 목요일 오후 다섯시에 예배가 있습니다.

 
 

제 2교회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 외곽에 위치한 미게우 키리누(Miguel Quirino) 지역에 2005년 엘에이 실로암 교회 강재식 집사님께서 만달러를 기증하셔서 8미터 16미터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2005년 6월 허운석 선교사와 저희 딸 김수산나가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제 2교회를 개척하여 현재 약 50여명 교인이 출석하고 있다.

제 3교회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로부터 약 이백킬로미터 떨어진 싼타이사베우 (Santa Iabel)에 2007년 쌍빠울로 동양선교교회 교인이신 김태현 장로님께서 만 8천달러, 쌍빠울로 연합교회 교인이신 주호걸 집사님께서 만8천달러를 기증하셔서 대지를 구입하고 2009년 서울 원촌교회(문강원 목사님에서 만달러를 지원하여 10미터 20미터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2007년 12월부터 사역자가 파송되어 싼타이사베우 교회를 드리며 시작하여 약 40명의 교인이 있다.

제 4교회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로부터 약 사백킬로미터 떨어진 바르셀로스(Barcellos)l)에 2007년 쌍빠울로 연합교회 교인이신 김태준 집사님께서 삼만달러를 기증하셔서 대지를 구입하고 2011년 사역자를 파송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약 20명이 출석한다. 현재 서울 신촌교회 김성전 장로님께서 허 운석 선교사가 주님께로 돌아간 것을 회상하시면서 허 선교사 기념 예배당으로 건축하자고 하시며 장로님과 가족들이 육천만원을 헌금하셔서 현재 10미터 21미터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있다.

 

형제들의 집 개원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인디오 형제들이 우리 동네에 생필품이나 질병치료를 위하여 나왔을 때에 잠시 며칠 동안 머무를 수 있는 집이 필요하여 합숙소를 건축하여 주기를 부탁하였기 때문입니다. 2000년 말 쌍빠울로의 김태현 장로 부인 최유순 집사가 대지를 구입하도록 헌금을 보내오고 또 전도명 선교사가 장학금으로 받은 헌금과 뉴욕의 장석렬 박사가 건축비를 보내와 단순한 건물을 건축하였습니다. 제 2의 형제들의 집이 매년 아마존에 와서 의료봉사를 하는 안정태 집사 내의와 안집사가 출석하는 새로남교회(오정호목사)의 도움으로 건추되어져 현재 외관공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 형제들의 집에는 약 100명의 형제들이 늘 머물렀다가 마을로 돌아갑니다. 신학교 졸업생 사라에바 목사를 파송하여 그곳에 상주하며 형제들의 집을 섬기고 있습니다.

 

 

군인 병원, 경찰서 같은 공공 장소에 찾아 다니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인디오의 집은 크고 작은 강 지류를 따라 정글 속 인디오 마을에서 생활하던 인디오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뱀에 물리면 몇 일씩 카누나 배를 타고 썽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 군인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치료를 받고 난 후 옮겨져서 치료를 받는 진료소입니다. 군인병원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치료하여 주는 유일한 병원이다. 경찰서는 범죄하고 잡혀 있는 인디오 죄수들과 브라질 인들이 갇혀 있는 곳이다. 이런 장소들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2회나 3회 방문하여 대화하고 기도하여 주고 전도합니다. 위의 공공장소에 머무는 모든 인디오들은 자기들 마을을 떠나 외롭고 가난하여 친구가 필요하여서 쉽게 마음 문이 열렸고 전도가 용이하였습니다. 이런 공공 장소에서의 전도를 통하여 많은 미전도 부족 형제들을 얻을 수 있었고 복음을 듣고 정글 속에 있는 인디오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인디오 마을에서 동네에 잠깐 들려 복음을 전해 들었던 형제들은 우리 교회 교인이 될 수는 없었으나 다시 동네에 오면 우리 교회를 찾아 나옵니다. 현재 이 공공 장소들은 주 1회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했던 이곳들의 전도 사역은 검은 강 상류 신학교가 개교한 후 많은 업무로 인하여 분주하여지자 우리 교회 교우들이 사역을 이어받아 계속하고 있습니다